온라인상담 온라인게시판 청소년Q&A 성이야기 성아카데미 Uacademy 병원안내 회원전용
 
  남성의 성기능
  여성의 성기능
  성 심 리     
        6. 자기설과 건강

몸에 자석을 대어 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은 일찍이 17세기에 연금술사와 점성가들이 시도했던 처방이었다. 그 배경은 인간의 육체 각 부분과 우주의 별들 사이에는 자기적(磁氣的) 연관성이 있다는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그후 안톤 메스머에 의해 발전되어 나갔다.

의학사에서 유명한 안톤 메스머는 1765년에 비엔나 의대 졸업시험을 우등으로 통과했다. 졸업논문은 '인간 육체에 미치는 혹성의 영향에 대하여'라는 제목이었다. 여기서 메스머는 점성학적인 이론을 도입하여 우주 공간에 널리 퍼져 있는 무형의 전류가 인간이 모르게 육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기술하였다.

'자기설'은 곧 파리에서 대유행을 일으켰고, 메스머는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유명한 사람 몇몇을 고쳐 인기를 얻었다. 그의 치료법은 연극과도 같았다. 크고 어두운 홀 가운데 참나무로 만든 '바께'라는 통이 놓고 통 안에는 물을 가득 채워놓았는데 통에 담긴 물 속에는 이상한 혼합물--둥근 유리, 쇠줄, 빈 병 등이 들어 있었다.

슬픈 곡조의 음악이 긴장된 분위기로 연주되고 있으면 갑자기 메스머는 밝은 색채의 긴 가운을 입고 등장한다. 그는 통 안에 있는 불운한 환자 주위를 걸으며 때때로 뚫어지게 응시하고는 쇠막대기를 잡고 있는 환자의 아픈 부위를 어루만진다.

치료가 성공적이려면 '자기적 위기'라고 불리는 경련이 일어나는데, 1782년 한 과학위원회가 메스머의 주장을 조사하기 위해 메스머의 치료과정을 지켜보았다. 당시 주프랑스 미국 대사이던 벤자민 프랭클린도 이 실험을 보았다고 한다. 그 위원회는 자기적 위기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세 시간 이상 진행과정을 지켜보고 자기적 위기도 보았는데 환자들은 사악한 물질이라고 가래를 뱉고 때때로 그 가래침에는 피도 섞여 나왔다. 경련은 몸 전체나 수족의 무의식적인 경련 또는 복부근육의 경련을 일으킨다. 환자들의 눈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고 얼마 후에는 눈물과 괴성 또는 커다란 웃음들로 요란스러워지고 이윽고 졸음이 따른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이 현상들을 어떤 초능력에 의한 것으로, 또는 귀신이 들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톤 메스머에게서 치료받은 환자들 대부분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은 그것을 본인의 잘못으로 돌렸고 병이 낫지 않은 환자라 할지라도 치료 과정을 겪으면서 일종의 후련한 마음을 느끼곤 했기 때문에 메스너의 인기는 그럭저럭 유지되어 나갔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메스머의 제자들은 요란한 참나무통의 장치나 자기적 위기가 치료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님을 발견하였다. 메스머리즘은 두 가지 방향으로 빠르게 전세계로 확산되어 갔다. 하나는 프로이트로 연결되어 동물자기설--최면술--정신분석학으로 발전하고, 하나는 대중과 연결되어 신비주의적이고 사이비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동물자기설을 치료에 이용하는 것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동물자기설이 신비주의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많은 비판 때문에 활발하게 연구되지 못하였다.

1783년 엘리오스트슨은 두 명의 히스테리 환자에게 동물자기술을 걸어 그들이 자기술에 걸려 있을 때는 보통 때와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대중 앞에서 증명해 보였고, 외과 의사인 제임스 에스다일은 1845년 벵갈 정부에게 동물자기술로 치료 업적을 인정받고 인도의 캘커타에다 동물자기술 병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1843년, 제임스 브레이드는 처음으로 동물자기술 대신에 '최면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브레이드는 동물자기설을 사기라고 생각하고 동물자기술과 최면술 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1862년에 파리에 있는 살페트리에 정신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장 마르틴 샤코는 최면술에 대한 신체적인 설명을 자세히하였고, 최면 자체를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하였다.
1862년, 6000명 이상에게 최면을 걸었던 베른하임은 "최면술의 작용 원인은 '암시'에 있을 뿐이다"라고 선언하고 실험으로 증명을 해 보였다.

1856년 5월 6일,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에른스트 브뤼케의 생리학 연구실에서 신경학과 신경해부학을 연구한다. 당시 그의 목표는 헬름홀츠의 물리학 이론을 응용해서 신경계에 적응시키는 것이었다. 1882년 프로이트는 비엔나 종합병원에 취직해 얼마 동안은 외과에 있다가 유명한 뇌 해부학자이던 마이너트의 정신과 교실에 들어간다. 3년후 그는 19주 동안 파리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살페트리에 병원에서 샤코를 만난다. 프로이트는 샤코의 권위적인 성격과 히스테리 환자들의 여러 가지 놀랄 만한 증상들과 최면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샤코는 최면술을 이용해서 히스테리성 마비, 경련 등을 완화시키는가 하면 그런 증세를 일으키게 할 수도 있었다. 그는 히스테리의 궁극적인 원인을 신경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프로이트는 이것이 심리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비엔나로 돌아온 프로이트는 신경과 병원을 개업하고 환자를 진료하면서 성적 갈등이 히스테리의 주요 원인이라고 발표한다. 그 후 20세기가 열리는 1900년에 그는 [꿈의 해석]을 발표하여 20세기 문화계에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장을 연다. 뒷날 여러 이론이 수정되고 여러 학파가 나왔지만, 그래도 어느 분야나 창시자가 제일 위대한 사람이 아닐까.

어쨌든 최면상태에 대해서는 지난 2세기에 걸쳐 논란이 있었던 의문점이었다. 그러나 최면술이 인간의 마음 속 근원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의 질병과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비해 과학적 관심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최면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마술적, 주술적인 신비로운 이미지와 그 불투명한 역사, 그리고 사이비 과학자들의 허풍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 가운데 플레세보(위약) 효과라는 말이 있다. 1930년에 에이맨이 35페이지에 달하는 플레세보 효과를 보고한 이후 수많은 보고가 나와 있다.

1963년 그렌펠 등은 항고혈압제를 이중맹법으로 사용하여 플레세보 효과를 연구했다.
이중맹법이란 환자도 의사도 어느 것이 진짜 약인지, 어느 것이 밀가루만 넣은 가짜 약(플레세보)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 결과 가짜 약에서도 평균적으로 수축기 혈압은 25, 확장기 혈압은 12mmHg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효과도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점점 증가한 것이었다. 7주가 지난 상태에서 최고로 많이 떨어졌고 50주가 넘어서부터는 서서히 처음의 혈압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위약 효과는 정신적인 질병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신체적 질병--예를 들면 두통, 위궤양, 통증, 당뇨병, 천식, 류머티스, 관절염 등에도 나타난다.

의사들이 어떤 특정한 질병에 특정한 약물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도 채 안 된 일이다. 유사 이래 100년 전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사들은 별로 신통치 않은 불특정한 약을 사용해왔으나 어느 정도 존경을 받아온 것은 거의 모두 이 플레세보 효과 덕분이었다고 의학교과서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밀가루약만 주어도, 신통한 약이라는 암시와 권위만 밑받침되면 환자들은 고통을 극복한다는 말이다.

자장을 이용한 의학의 역사도 이렇게 진행되었다. 오늘날에도 자기력 팔찌나 수맥을 이용한 건강법 등 이 자기설을 이용한 이상한 건강법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몇몇 환자를 대상으로 잠자리를 바꾸었더니 임신을 다시 하였다거나 관절통이 호전되었다는 예를 들기도 한다. 온갖 의학적인 실험이 실시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같이 싣든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는 언론의 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한바탕 소동으로 끝난 천지산의 효과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에게는 성적인 능력, 여성에게는 예뻐지는 약이나 살 빠지는 약 또는 비법 같은 것들이 항상 이런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세계 녹용 소비량의 60-70%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강과 정력에 관심이 있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보다도 의사들이 과학적 사실에 관해 언급을 회피하거나 보건 당국이 통제를 제대로 못하는 것에 더 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논단 1996년 8월)

◀◀◀ 목록보기


Copyright ⓒ 2004 서울 성의학 클리닉.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