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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에너지


프로이트의 수제자인 빌헬름 라이히는 온갖 방향으로 급진적인 사상을 전개했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들의 전통적 필독도서인 [성격분석]을 썼고, 그만큼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신분열증으로부터 은하수에 이르는 모든 양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오르곤 에너지'를 제창하여 심령학자들과 히피들에게 우상적인 인물이 되기도 했다. 성욕보다는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호나이나 설리반 등 같은 신프로이트 학파에게 있어서 라이히의 성격분석은 이론적인

스승이되어주었다.
사실 오늘날 정신과학의 많은 부분은 라이히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들이다. 이 성격이론과 성격분석의 기술로 라이히는 1920년대 후반, 정신분석 운동에 있어서 일약 선도적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1928년에 라이히가 비엔나에 성치료상담소를 세우자 수천명의 남녀들이 그의 강의를 듣거나 성적인 일에 관해 조언을 얻으려고 몰려들었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성적 갈등이 노이로제를 일으키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제자인 라이히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노이로제는 생식성의 장애로 인해서,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만족스런 오르가슴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발병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노이로제를 치료하려면 억압된 생식성을 재생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제자 중 많은 사람들, 예컨대 설리반이나 호나이, 프롬, 안나 프로이트, 하르트만, 에릭슨 같은 사람들이 무의식적 요소를 깎아내렸던 것과는 대조적인 방향이었다. 라이히는 말리노프스키 등의 저술을 분석하여 기원전 4000년 경에 모가장제(母家長制)에서 부가장제(父家長制)로 넘어온 것을 인류의 비극이라고 했다. 모가장제 사회에서는 어린아이나 성인의 성욕에 관대하였고 성적 억압도 없었다. 또 거기에는 경제적 착취도 정치적 지배도 없었다. 따라서 각종 제도들을 유지하기 위해 복종적 성격구조를 창조할 필요도 없었다. 이 목가적이었던 모계사회가 권위주의적이고 폭군적인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강제적인 일부일처제가 생기고 청년들에게는 성적 절제를 강제적으로 요구하게 됨에 따라 그에 대한 부산물로서 청소년 범죄, 노이로제, 성도착증, 동성애 같은 온갖 문제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금지된 이별]이라는 영화를 흥미롭게 지켜본 적이 있다. 기술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한 혹성의 외계인들이 멸망했는데 그 원인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인간 무의식의 '이드(Id, 자기보존 욕구에 입각한 본능적 충동)'라는 괴물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동물적인 심층을 의혹스럽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이드를 '끓어오르는 충동들로 가득 찬 솥'으로, 무의식을 '무시무시한 요괴들과 살인적인 욕망들이 득실거리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라이히는 성욕과 공격심으로 가득 찬 추악한 무의식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본질적으로 건강한 근본적 실재의 왜곡으로 파악하였다.

라이히는 성격을 프로이트식의 세 가지 모델로 설명하였다. 인간 내부의 가장 심층적인 곳에는 '자연적인 사회성과 성욕, 노동을 자발적으로 즐기는 성향,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모든 본능들은 성을 부정시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억압될 때, 두 번째 층으로 전이되어 새디즘, 탐욕성, 호색성, 질투 등을 비롯한 각종 도착(倒錯)들이 지배하는 '프로이트적 무의식'으로 나타난다. 이 두 번째 층은 다시 성격학적 상부구조에 의하여, 즉 '자제, 위선적인 사회성 등'에 의하여 가면처럼 덧씌워져 은폐되고 보존된다. 1934년 이후의 라이히의 이론은 엉뚱해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 쓰여진 책은 정신과학에서 금서 판정을 받는다. 1934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성기관들이 흥분 상태에서 그들의 생전기적 충전의 증가를 보여주는가를 측정하기 위해 기묘한 실험들을 행하였다.

1939년 그는 생명과 성욕에 고유한 종류의 에너지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오르곤(orgone) 에너지'라고 이름지었다. 나머지 생애 동안 라이히는 오르곤 에너지의 특성들을 조사하고 치유력을 이용하는 일을 연구하는 데 매달렸다. 말년에 점차 편집광적으로 변해버린 라이히는 오르곤 에너지를 가시적이고 측정할 수 있으며 오르곤 에너지 저장소에 넣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히스테리에서 암에 이르는 질병까지 모든 정신적, 신체적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신문 매체 및 과학자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박해와 비판 속에서 라이히는 점점 더 편집광적으로 되어서 자신을 소크라테스로부터 마르크스에 이르는 순교자들, 특히 예수와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1954년 미국 연방 식량 및 의약품 관리국은 라이히가 기만적인 치료기구인 오르곤 에너지 집적기를 사용한다고 주 법원에 제소하였다. 라이히는 출두하지 않았고, 결국 1956년 재판에 회부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복역 중, 1957년 11월 연방 형무소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하였다. 1934년 이전에만 해도 빛나는 치료자의 한 사람이던 라이히는 결국 환자로서 생애를 마쳤다.

라이히는 전쟁이나 여러 문제를 모두 섹스 에너지 문제로 귀착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 황제 카이저와 귀족계급의 불만족스러운 성생활로 인해 일어났다고 하는 주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을 뿐더러 때로는 뒤통수를 한 대 치는 것 같은 예리함이 보이는 그의 이론은 성의학이 상당히 발달해서 거의 모든 성기능장애를 그리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현재까지도 상당히 유용하다. 기본적인 심리적 이론들은 이미 1920년대에 거의 다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동력은 섹스에너지일까. 전공의 시절 '여자들이 뜨개질 하는 것이 마스터베이션 하는 것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전문의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까지 비약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무의식에 중점을 두는 이론에 감정적인 반발도 있었다

원래 정신분열증이나 정동장애 같은 정신병적 상태에 빠지면 억압이 풀려서 온갖 종류의 요괴가 득실거리는 '이드'가 튀어나오고 얌전하던 아가씨가 온갖 성적인 얘기를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것을 알게 되는데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단순하게 느끼도록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분석을 계속 공부하게 되고, 작년 재작년에는 낮동안 뉴욕 맨해튼의 비뇨기과에 가서 하루 몇십 명씩 온갖 인종의 발기된 음경을 보다가 저녁이면 차를 몰고 개인적 분석을 받았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성의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던 필자의 스승이었던 헬렌 카플란도 우선은 정신분석의였기 때문이다.

꿈 분석을 매일 하게 되고, 첨단과학을 하는 비뇨기과의 발기부전 클리닉과 어떤 면에서는 원시적인 방법을 쓰는 정신분석학적 면담 사이에 상당히 분열을 느꼈었다. 인간 무의식에서 공격심과 더불어 두 축을 이루는 성 에너지에 관한 얘기는 무의식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쉬운 예를 들면 이렇다. 영화를 볼 때, 섹스와 무의식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공격심, 즉 폭력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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