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아카데미 입니다 ▒▒
 
                    
온라인상담 온라인게시판 청소년Q&A 성이야기 성아카데미 Uacademy 병원안내 회원전용
 
  성의학 정보
  성아카데미
  게시판

  Total : 38, 1 / 1 pages          
글쓴이   H.U.Seol M.D.,Ph.D.
첨부파일   octo911_3674533.jpg (89.1 KB), Download : 49
제 목   小周天. 도교,,...
                       .......suntaokorea.com/에서

*의념과 임독유통(小周天, 轉法輪)에 대한 문답  


*소주천(전법륜: 임독유통)과 의념사용에 대한 질문과 견해*


*질문1: 김정식

안녕하세요.
저는 기 수련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소주천에 관하여 궁금한데요.

여러 기수련 단체중 귀 단체에서는
소주천을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기의 순환이 어느 방향에서
어느 쪽으로 흐른다던지 하는 것 말입니다.

또한 귀 단체에서 소주천을 이루려면
객관적으로 얼마정도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며
소주천이 되면 어느 정도의 경지(즉 마음과 몸의 상태)가 되는지요.


*질문 2: 백송

뵌적은 없으나 예전부터 법사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 단법수련이라는 책을 보고 한번 찾아 뵙고 싶었으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 이렇게 홈페이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법사님이야 말로 진정한 수도자의 표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론으로 아무리 환히 깨달아도 실 수행이 없으면 도로아미타불인것을.....

: 하지만 무지한 중생을 위하여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발심하신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평소 국선도 수행법중에 의문을 품어 오던 것을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 다름이 아니라 의념수련에 관한 것입니다.

: *첫번째로, 기운이 어느정도 아랫배에서 느껴지면
이 기운을 의념으로 돌돌 말으라고
: 하는데 꼭 이렇게 의념을 써야 하는지요.
아랫배에 느껴지는 기운 자체에
집중만 하면 안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 *두번째로, 임독자개 수련에서 마찬가지로
실제 기운이 돌아가지 않은데 굳이
:  의념으로 매번 일주천을 시켜야하는 것인지요?

: 스스로 기운이 돌때까지
그 움직임만 지켜보면 안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너무 당연한 걸 의심하는건 아닌지
: 심히 부끄럽습니다.
이 어리석은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답장글

유정식씨 그리고 백송선생님 안녕하세요!
늦게 인사드려서 죄송 합니다.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하여 고마운 마음으로 회신 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수련문화에 있어서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하셨군요.

*의념이란 수행인에게 있어서
올바로 이해해야 될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요.

그리고 이문제가 올바로 이해되지 못한다면
정도를 행하기 어려운 아주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지요.

1.무엇을 <의념>이라 하는지 의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 되어야 하겠지요.

*수행인이 사용해야 되는 의념의 뜻은
무념, 무상, 무심의 眞意를 말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는 인위적으로 작위하지 아니하나
자연적으로 행해지는
본성(無爲而無不爲之性)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선도의 청산 선사님께서는
無思之思라고 하신 것이
意念의 자세를 표현 하신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일반적으로 仙道에서는
여타의 마음작용과 구별하여
眞意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 眞意는 氣수련에서
기를 운용하는 주체가 되는 것으로
氣의 승화 작용을 菁龍
(특히 척추 골수의 독맥을 타고
오르는 眞氣)이라 하는데,

이 靑龍의 氣를 다스리는 것이
眞意로서 如意珠라고하여
흔히 용의 입속에나 머리 밖에
붉은 불구슬 같은 모양으로 묘사하였고,

용이 이 여의주를 얻지 못하면
승천하지 못한다는 상징적 의미는
수행인이 眞意를 갖추지 못하면
도를 이룰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佛家에서
見性을 해야 成佛 할 수 있다는
見性成佛論의 입장에서 본다면

見性 즉 成佛이 아니라
見性은 眞意의 如意珠를 얻는 것이고,
그 이후에 慧命(眞氣)을 닦는 것을
成佛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러한 見志에서 수행하는 법을
性命(定慧)雙修의 法이라 하며,
仙道에서는 神氣를 수련하는 것이
수도의 근본이라 한 것입니다.

이 여의주의 힘으로
용이 승천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心身一如적 사상에서
상징화 하여 표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를 道家에서는
無爲自然의 法이라 하였는데
人爲的인 생각이나 마음을 가지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라 판단 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실체가 없으면서도
능히 모든 현상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되기 때문에

一切가 唯心造요,
諸法이 唯識所現이라 한 것으로
수행자가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중생은 마음의 허망을 따르는
諸行無常의 삶을 살아 간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말은 수행인이 생각이나 마음을 가지고 하면
그 證果가 생각이나 마음이 만들어 내는
虛像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허상에 속지 않기 위해서
예날의 큰 스승들 께서는
마음을 놓아 버리는 下心을
수행자의 절대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라 생각 되며,

자신이 스스로의 마음작난에 속지 않기 위해서
눈푸른 스승을 만나려 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처녀의 상상임신이나 춘향이 놀이
(전래되어 내려온 집단최면에 의한
자아인식의 혼돈의식 즉 자신이 춘향이처럼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등의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최면 놀이), 및
서양의 종교 영화인 '신의 아그네스' 등에서도 알수 있듯이

마음의 심리적 작용에 의한
'同一視的 히스테리반응'에 의한
모든 현상을 道나 神의 은총을
증득한 功果로 잘못 착각하게 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 됩니다.

*그래서 수련인에게 스승이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은
마음을 항복 받는 것으로
무심, 무념, 무아로서
수행 할 수 있는가를 본 것입니다.

이러한 降伏其心의 문제는
수행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었다고 보아 집니다.

(마음은 때로는 신선앞에 앞드려 있는
호랑이의 모습인 <伏虎>로 표현하고 있다고 봅니다)


*청운도사님이 청산 사부님에게 이른 것도
수행은 무념무상으로
적적성성하게 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국선도의 단법수련에 잘 나타나 있고,

달마가 혜가에게 마음을 가져오라 한 것도
마음이라는 실체가 없는 것임을 확인 시켜 주신 것이고,

원효가 깨달은 것도 一切唯心造라는
중생의 업의 세계를 이해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기 없을 듯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세상것으로는 너희를 구원 해 줄 것이 없나니
오직 하늘의 것으로만 너희를 구원 할 수 있다고 하였고,
오직 하나님 만을 믿고 따르라고 한 것이라.' 생각 됩니다.


*이를 仙道에서는 마음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세상에 대한 인식을 後天이라 하였으며,

無心,無念, 無想의 세계로
이미 창조이전부터 존재하는 실상을 先天이라 하였고,

마음이나 생각을 벗어나
이 선천의 바탕을 닦는 것을
佛性이나 神性이나 先天을 닦는다라고 하여,

이를 바탕으로 하여
性命을 雙修하고
神氣를 닦는 것이라고
설명 하였다고 생각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이나
느낌이라는 허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의념으로 수련 하는 것은
종교적 신앙이나 수련단체들이

사이비적 신비주의에 빠져
결국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는
거짓 선지자나 거짓 스승이 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意識의 轉移(전이)에서
나타나는 신비현상을 가지고
어떤 도나 구원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성취욕을 부추기는 것은
오늘날의 수련문화가 안고 있는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됩니다.

사이비가 정통으로 호도되는
奇現像이 정당성을 부여하여
사회에서 세력을 과시하게 되는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 일 것입니다.

*다만 훌륭한 지도자가
이러한 마음이라는 의식의 허망함을 알고 있으면서
초심수련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편으로
의념을 이용하는 것은 간혹 선택 될수 있는
지도자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보조국사는
'因地以倒者는 因地以起니라.
땅으로 인해서 넘어진 자는 다시
땅을 의지해서 일어 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으로 의념을 사용하는
지도자의 고충을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의념으로 현상에 집착하여
과대망상증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시켜야 하는 것도
지도자가 간과 해서는 안될 책임과 의무 일 것입니다.

2.다음으로 周天에 대한 질문에 의견을 말씀드리지요.

*단전에서 기운을 돌린다거나
임독맥의 소주천을 의식적으로 돌리는 것 등은
의념의 집중이나 정신의 통일을 위해서
가르칠 수 있는 방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虛而待之(비우고 기다리면)하여
靜極而動(고요함이 지극한 가운데 움직임 있다.)이라고 하였듯이
원래는 無心으로 자연의 법을 따라 수련하다보면

단전에서 선천의 기운이 생겨 자연히 돌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인위적인 주천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선도에서 임독 유통도 분명히
自開(수련의 때가 되면 스스로 열림)된다고 하는 것이니,

아무리 마음으로 임독을 돌린다 해도
이것은 미음이라는 환상의 작용이라눈 것을 알아야 하며,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고서는 임독맥이
열리지 않는 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남궁두는 권진인 이라는
200여세가 넘는 대도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무주의 적상산에서 벽곡법과 庚申法
(잠을 안자고 수행할 수 있는 경지-睡魔의 극복법)을
이루는 등 많은 도법을 통했으나,

소주천의 법에서 下心이 안 된고로
走火入魔에 빠져 고통을 당하자
스승인 권진인은
제자 남궁두가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여

慾火가 발동하여 수행이 실패로 돌아 간 것을
애석히 하면서 세상으로 다시 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후 남궁두는 선도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등을 벗으로 삼아 人仙의 경지로 일생을 보내다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면서 당시 90여세의 수명을 살다가
더이상 세상살이가 싫다고 하며,

새상을 하직 했다는 남궁도의 수행기에서도
마음의 작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짐작 하리라 생각 됩니다.

(이로서 허균은 남궁도의 선도적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을 道家的 仙道사상을 근거로 하여
쓰게 된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국선도에서도 의념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지도의 방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며,
끝까지 의념으로 하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임독유통의 법은
周天 또는 轉法輪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을 되도록 하는
연습의 방편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며,

수행인이 임독유통이라는 표현은 한의학적 표현으로
주천의 법과는 사실상 의미나 이해정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수련으로 인한 眞氣의 발생으로
임독맥이 자개되는 수행상의 기맥개통의 현상은
한의학적인 경혈의 임독맥의 순환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는 사실도 인식 해야 할 것 입니다.

*한의학적인 임독맥의 기혈 순환은
사람 누구나 이루어 지고 있는 것으로
침구로서 다스릴 수 있는 경혈을 말 하는 것으로

선도수련에서 말하는 진기의 유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인식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眞氣의 유통은
골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精氣神을 얘기할 때 뇌수를 기로 보는 것은
換精補腦의 법을 근거로 한 것이며,

단전의 丹火의 발생으로 인한 진기가 유통되므로 해서
뼈가 바뀐다는 換骨道胎(환골도태)라는 말이
선도의 용어로 쓰인 것이라고 봅니다.

*환골도태에 대한 의미는 좀더 숙지할 내용이 있으으므로
글로서 다 밝히기 어려운 점이 있음을 이해 해주기를 바라며,

의념의 문제나 기의 주천의 문제는
너무 쉽게 단정하지 말고 수련을 체험해 가면서
문제에 진실하게 접근해 가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념이나 주천의 문제 제기는
몇년 전의 일본의 '옴 진리교'가 그렇고,

요즘 중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法輪功이
지나치게 의념을 강조하고 이홍지라는 개인에 대한
절대적 신앙 신념이 사이비 종교화 되는 현상을
우려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의념에 의한 수련이
쉽게 환상적 신비감에 도취 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진실 한 것으로 오해 될 수 있어서
맹신이나 맹종 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나친 마음의 혼란이나
정신이 산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의념에 의한 수련의 지도가
도움을 줄 수 있음도 인정 합니다.

이글은수련에 대한 의혹을 해결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다면 좋겠고
올바른 도의 길로 들어서시는데
참고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며,
본인의 견해가 꼭 옳다는 주장의 글이 아닙니다.

*단전에서 기를 돌리는 것도 임독을 유통시키는 것도
원래는 태아 때 부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작용되었던 방식이 태식이고,

이것은 바로 단전에서의 기의 순환작용
(팽창과수축이라는 음양적 작용에 의한 생명작용)을
태식이라고 하는 단전호흡의 근본으로
이해 하는 원리가 될 것 입니다.

*그 다음으로 임독유통이니 12경락 유통이니
14, 365경락의 유통 및 경지에 관한 문제 등도
수행이 증과에 대한 허망한 환상에 빠지지 말고,

위와 같은 한의학적 표현에 대한 이해와 도는
무위자연의 법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한테 속지 않아야 하겠고,
또 남한테 속지않아야 하며,

남을 속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된다는 원칙하에
수련의 올바른 원리를 알고
올바른 스승을 찾아가 수련하면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도가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멀리한 것이라.'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도를 오해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혹 초심자라면
이곳 저곳 도장을 순례하시지 마시고
올바른 법이 있는 정통성이 있는 수련원에 가서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
우선 일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수련이 무르 익으면
임독맥 유통의 소주천은 自開되는 것이 원칙이고
그외의 임독맥 순환 기수련은 임독이 自開되도록 하는
방편적인 지도 방법 일 것입니다.

*단전의 기나 周天은 마음이나 생각으로도
얼마든지 사실적 느낌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사실적으로 착각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마음의 현상이 신체에 나타나는
신체증(同一視的 히스테리 반응)을 유발하지 않도록
유의하셔서 마음의 현상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 위 내용은 순전히 본인 개인적인 판단과 의견을 피력 한 것 입니다.

2001. 6. 24. 현일자 드림


단법수련과 자연과학의 시공초월 개념

                            정 일 봉 (경북대 수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모든 자연 현상과 물체는
그 자체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움직임을 가지는 물체는 속도와
가속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분을 이용하여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초보적인 예를 들면 원들의 모임은
xⁿ+yⁿ=aⁿ(단 n=2, a는 상수)으로 표시되고
여기서 양변을 미분하면 x+yy′=0 이라는 식으로 표시되어
극히 단순한 물결의 움직임을 표시하는 초보적인 식을 나타낸다.

그리고 은하계의 별들의 움직임은
행렬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벡터기저변환에 의하여 실제와 아주 근사하게
행렬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방정식으로 일단 나타나면
이 현상은 이진법으로 변환하여
컴퓨터에 의하여 여러 현상과
성질들이 분해되어 밝혀진다.

예를 들면 스윗치가 연결된
전기회로의 모델을 생각하자.

스윗치가 연결되면 1로 주고
스윗치가 연결되지 아니하였으면 0로 주며
반응에서는 반응이 없을 때를 0으로 보고
반응이 나타날 때를 1로 보면
컴퓨터화 되어지는 즉 방정식화 되어지는
자연현상은 자연스럽게 이진법화 한다.

사실 모든 우주의 상을 이진법화 하는 것이
자연과학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서양과학은 직관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서
먼저 우주의 본질을 추구하여 인간의 초자연성을 찾고자하는
귀납적 방법에 의하여 직관적으로 대상에 접근한다.

직관이란 우주의 존재 혹은
근본적 실체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의 방법이다.

어떠한 논리를 통한 이해라는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사고가 아니고,
인간의 주관이 직접 객관적 대상을
파악하려는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과학에서 유래한 자연과학은
우주의 본질을 직관적 방법을 통하여 파악하고
파악된 구조에 인간 외적인 방법 즉 도구,
기계 등을 통하여 인간의 문제에 접근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는
귀납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단법은 즉관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간내면의 우주성을 찾아서 궁극적으로 우주에 접근해가는
연역적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그 사고의 태도가
다소 다름으로 즉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접근방법이 자연과학적 접근 방법과
아주 상이할 것 같으나 동양철학에서 자연현상과
우주의 실체를 밝히고 있는 역학의 원리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두 개의 궤상 즉 음과 양에 의하여
궤상을 표시하고 모든 자연현상과
우주의 실체를 음과 양의 궤상의 조합으로서 표시하니
이것이 바로 이진법적 접근방법이다.

그러나 만물의 상의 실체를 이해 할 때에는
완전히 대조된 즉관적 접근방법을 택하고 있다.

즉관적 단리는 만물을 상으로 관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깨닫고 체득하는 것을 卽觀이라 한다.

역학의 원리로 해명하면 계사에 나오는
一陰一陽之爲道라는 말로서 설명될 수 있는데
즉 일기가 변화하는 모습 즉 그 상이
한 번은 음적 형상이요 한 번은 양적 형상이 되어
작용하는 것이 천지의 이치라는 뜻이다.

천지만물은 이와같은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기의 묘운으로서 존재하고 변역한다고 보는 것이
역의 상으로 즉관된 우주관이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에 의해
얻어진 것이므로 直觀이 아닌 卽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단법수련은
사람의 한 몸을 하나의 우주의 상으로 보며
기의 상이 호홉으로 음양의 상이
一呼一吸으로 생성변화의 도로 보며
인간은 음양의 이기교감으로 화생하여 도를 얻어
우주의 생성 본질에 접근하는 연역적방법을 취하고 있다.

2. 단법수련의 시공 초월 개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닦아서 궁극에는
우리 인간을 전인적 극치적인 인간으로 변화시켜
우주와 합일시킴으로서
시공 초월의 도력이 나타나는 과정을
국선도 수련을 통하여 살펴본다.

(1) 국선도 수련 개요
단법의 수련은 마음의 수련(조심)과
호홉의 수련(조식)을 통하여
신경과 경락의 조화로
하단전을 중심으로 따뜻한 기운을 모은다.

이것을 축기라하며 축기된 기운이 하단전에서부터
서서히 경락의 주축인 임맥과 독맥을 따라 전신에 유통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기경팔맥의 모든 맥이 열리어
전신의 기공으로 기통작용이 일어나는
기공호홉의 경지에 도달할 때
초인간적인 현상이 나타나며
종국에는 나를 우주에 합일시키는
환허합도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방법으로서 국선도에서는
정각도 3단계 (중기단법, 건곤단법, 원기단법),
통기법 3단계(진기단법, 삼합단법, 조리단법),
선도법 3단계(삼청단법, 무진단법, 진공단법)의 수련단계가 있다.

정각도 3단계에서는 우리 몸에 있는
선천원기를 모아 하단전에 축기하는 과정을 말한다.

먼저 중기단번 50동작은
우주만유가 현실을 유지하는 것은
중기의 운용으로 중기는
음양이 합실한 중심원리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수도의 초공으로 삼고 있다.

건곤단법은 우리의 생명체의 정, 기, 신 삼원을 바탕으로
우주적 입장에서 23동작을 행공하는 고행이다.

그리고 정각도 마지막단계인 원기단법은
365경락을 유통시키는 365동작의 행공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중기단법에서 중심을 찾고
건곤단법에서 천지적 행공을 닦고
원기단법에서 천지의 원기와
자신의 원기를 합일시키는 수련이다.

특히 인신은 소우주로서 오장육부가
천도의 오운육기작용과 같음으로
천도에 365 골절이 있는 까닭에
중기단법과 건곤단법에서 행공한 축기로
14 경 유통과 365 기혈유통으로
전신의 말초신경에 이르기까지
천도성을 갖추어 원기단법에서 365 행공을하여
우리몸의 구석구석까지 기를 유통시켜
우리 몸을 건강체로 만든다.

통기법의 첫 단계인 진기단법에서는 정심정좌의 수련으로
입단법, 좌단법, 전단법, 와단법, 공단법 등을 통하여
단전행공하여 임독을 유통시키는 단계이다.

임독이 자개 된 후에는
일체의 질병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고
몸이 가벼우며 늘 마음이 즐겁다고 하였다.

삼합단법은 천지인의 삼기가 합일되어
내 몸에서 그 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단법이다.

다시말하면 삼합단법은 진기단법에서 임독의 유통으로
도문을 자개한 연후에 일신 전체의 문을 여는 기공호홉으로서
기경팔맥을 중심으로 모든 경락과 혈맥을 완전자개 시키는
묘경의 수련법 이다.

조리단법은 통기법의 마지막 단계로
동기의 극치적 단계로서 나의 한몸이
자연체가 되는 수련이다.

기공호홉으로서 진기를 전신적으로
유통이 자유자재하게 되는 수련이 조리단법 이다.

그래서 우주와 자신이 상통하여 하나가 되는
우아일여의 경지를 이룸으로서
도문에 완전히 들어가는 것이다.

국선도 수련의 마지막 단계인 선도법은
삼청단법, 무진단법, 진공단법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단계는 국선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수련과정으로,
도의 심오한 철리와 묘용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초월의 단계로서
3천의 공과 8백의 행이 원만히 갖추어져야
능히 이 단계의 비밀한 뜻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때부터 시공을 초월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삼청단법은 도태하여 양신을 출태 시킨다.

몸 밖으로 진신이 출현하면
수많은 화신을 나투는 수행을 하게 된다.

무진단법은 고요히 앉아서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누어서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각각 수없이 나누었다가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모았다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다가는
다시 또 나누었다가 모으는 단계로서
말이나 글로 풀어 낼 수 없는 단계이다.

眞空 丹法은 몸과 마음을 허공에 높이 띄우고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나누어 홀올과 맺어주고

마음도 홀올의 뜻과 맺어주고
한없이 흩어서 먼지도 남지 않게 하였다가
서서히 허공에 모아 보았다가 몸과 마음도 합하고

다시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나누어 놓고
또 합하고 하여
최대 최고의 하늘과 땅기운까지도 끊고 풀고 하여
우주와 완전히 합일시키는 還虛合道의 단계이다.

이와같은 단계에서 나타나는
초월적 현상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2) 단법수련의 시공초월 개념
국선도의 각 단계마다 변화가 나타나며
陽神을 出胎한 후에는 시공을 초월한 단계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과거 미래를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며
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공간의 개념이 없이
마음이 움직이는데로 이동이 가능 하다는 개념이다.

유가심인 수능엄경 증험설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마음대로 변화할 수도 있으며
무한 겁의 수명을 누릴 수 있다.

천지도 고요하게 할 수 있고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아라한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며
선도에서는 天仙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시공초월 현상을 자연과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아래에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한다.

뿐만아니라, 역사적으로 이를
실현한 많은 인물들이 실존하였다.

신라시대의 김가기, 자혜스님, 조선시대의 김시습,
권진인, 정희양, 정렴, 전우치, 그리고 최근에는
아직도 살아 계시다는 개운조사를 들 수 있다.
(참고문헌 [3]}.

개운조사가 지리산으로 들어 가시기전
도의 증거를 남기기 위하여
바위 위에 맨주먹으로 새겨 놓았다는
洞天이라는 글자는 아직도 남아 있다.

속리산 동편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동에서
심원사로 가는 길가 밭 한가운데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일대에는 옛날에 어떤 선인이 도장산에서 살았는데
맨손으로 바위에 글씨를 새겼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전해온다.

이와 같은 선도적 개념을 바탕으로
자연과학의 시공초월개념을 살펴보자.


3. 자연과학의 시공초월 개념

아주 먼 옛날부터 인류는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우리가 살면서 느끼고 있는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라이트 형제에 의하여
비행기가 발명되고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다녀왔다.

그리고 현재에도 지구 밖의 별을
탐험하기 위한 연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연구 및 탐험과 더불어
우주의 생성에 관한 연구도 추구되어 왔다.
이것과 관련된 두 개의 학설이 있다.

첫째는 우주의 창조는 대폭발과 팽창에 의하여
시작되었다는 빅뱅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마치 원과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측면과 더불어
우주의 본질을 연구하는 이론이
뉴턴에 의하여 연구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아주 최근에는
위트니 등의 수학 및 물리학자들에 의한
스트링 이론에 의하여 우주의 구조가 연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론은 수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저차원의 공간의 연구를
고차원의 공간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3차원으로 보여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3차원 이상의 공간으로 이루어 져 있다.

이와 같은 이론을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공간의 차원을 설명하자.
여기에서 말하는 공간은 벡터공간을 말한다. 예를 들면 점, 직선
그리고 면과 같은 공간이다.

점은 0차원의 공간이라고 하고 직선은 일차원의 공간이라고 한다.
직선에는 1 이라고 하는 기본이 되는 벡터가 있어
다른 벡터는 모두 1로서 표현이 되기 때문에 일차원이라고 말한다.

또한 면은 (1,0) 과 (0,1)이라는 두 개의 기본이 되는 벡터가 있어
다른 벡터는 모두 이것으로서 표현이 되기 때문에 이차원이라고 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공간을
삼차원 공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1,0,0), (0,1,0) 그리고 (0,0,1)이라는
세 개의 기본 벡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계속 생각하여
공간의 차원을 생각 할 수 있다.

일차원의 기하학적 모델을 직선으로 생각하여
무한 원점을 한점으로 붙인 공간(compactification)은
원과 같은 위상 적 공간(topological space)이 된다.

이 원은 일차원이 굽은 공간으로서 이차원 이상
공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일차원적 지엽공간이며
유한 확정된 공간(compact)이다.

이원을 구부리면  위상 적 구조는
변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그림 1과 같이
구부러진 공간을 생각하자.

그리고 이공간에 어떤 일차원적인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생명체는 일차원적인 생명체이기 때문에
선 밖의 세계는 전혀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보지도 못하며 살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생명체는 그림 1의 공간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일차원 이상의 세계에서 보면
더 넓은 공간이 바로 옆에 있다.

만약 이 생명체가 가 점에서 나 점으로 갈려고 하면
그는 가장 빠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선을 따라서 둘러갈 것이다 (2차원에서 볼 때).




한편 이곳에 이차원적인 생명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 생명체는 '가' 점에서 '나' 점까지
가기 위하여 직선으로 갈 것이다.

이 생명체가 '나' 점으로 가기 위하여 선을 벗어난 순간
일차원 세계에서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고
'나' 점에 도착한 순간에 일차원 세계에서 다시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차원 세계에서 보면 기적이요 초월적인 것이지만
이차원세계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이 원리를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 확장하여 보자.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차원 공간의 기본 모델은 면이다.

면의 끝점(무한원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음)을
한 점으로 모으면 공이 되며
이공간은 이차원인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삼차원공간 내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도 위에서처럼 생각할 수 있으며
이공간의 모델이 바로 지구이다.  

뿐만 아니라, 이 도형은 마치 2차원 공간 즉
지엽적으로 볼 때 면으로 느껴진다.  

이차원 공간에서 차원을 한 단계 더 올리면
삼차원이 되며 바로 우리가 느끼는 삼차원 공간이다.

이 공간의 무한 원점을 모으면 어떤 공간이 생기는데
이 도형의 모델은 앞에서처럼 삼차원 공간이 굽어져 있는
사차원 안에 속하는 도형이다.

이도형의 모델이 우주의 구조에
근접하는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의 스트링 이론에서는
26차원까지 확장하여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아인슈타인에 의한
사차원 세계를 살펴본다.

만일 우주의 모델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차원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공간이 굽어져 있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만일 굽어져 있다면
어떻게 굽어져 있느냐?
왜 굽어져 있느냐?
또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이러한 사실을 규명하면 丹法 수련의
還虛合道 단계에서 나타나는
시공초월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이 문제에 의문을 품고 연구하여
태양주위의 공간은 중력장에 의하여 굽어져 있기 때문에
빛이 통과할 때 굽어서 간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바탕으로
우주는 삼차원의 공의 원리처럼
사차원적으로 유한하며 둥글다고 설파하였다.

사실은 일식날 별 빛이 태양을 지날 때
관측되어 진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그림 2 참조).




그러나 인간은 사물을 관측할 때
빛을 통하여 관측하기 때문에
공간이 굽어 있다는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만약 굽어 있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만일 일차원에서처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 할 때
굽어진 공간을 통과해서 이동하면
시야에서 사라지고 어느 한순간
다른 지점에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공간초월 개념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세계 도처에서
간혹 나타나는 것을 신문 등을 통하여 소개된다.

공간이 굽어 있다는 사실은
블랙홀에서도 입증되었지만
클라인바틀 (그림 3) 같은
수학의 기하학적인 모델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사람이 다른 지점으로 이동 할 때
동양에서 말하는 축지법 및 순간이동과 같은
공간 초월 개념을 기하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다음으로 시간 초월 개념을 설명하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만약 물체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면
시간이 정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고 하였다.

이 원리를 웜홀(wormhole)에 적용하면
순간이동 및 과거와 미래의 여행을 설명할 수 있다.

웜홀이란 4차원 이상의 공간에서
그림4 처럼 굽어진 공간에서 직선보다
더 빠른 통로를 의미한다.




이 길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시간이 과거로 흐르게 되며 가 지점에서 나 지점을 경유하여
가 지점에 오게되면 과거와 마주치게 된다.

인과율의 문제 즉 흘러간 역사를
바꿀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발생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겠다.

만약 과거로 흘러갔을 때
과거의 자기가 거기에 과연 존재할까.
필자는 이 문제에는 어떤 답을 줄 수 없다.

위에서 설명한 이론의 보충 설명으로서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제기된 물체가
시간에 준하는 속도로 움직일 때
과연 시간이 정지할 것인가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은 오래 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정설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예로서 지구 오존 층에 있는
중간자라는 무게가 거의 없는 입자가 있다.

이 중간자는 태양 빛이 오존층을 통과할 때
빛과 충돌하여 빛의 속도로 운동을 하게 되는데
지구에 도달한 후 소멸 될 때까지의 수명을 계산하였을 때
이동 할 때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증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사실들이 실증되고 증명되었지만
아직도 우주의 신비에는 티끌만큼도 도달하지 못하여 안타깝다.

4. 맺는말

단법수련을 통하여 얻은 시공초월의 도력은
우리의 몸을 소우주로 보고
몸과 마음을 우주에 일치시켰을 때 나타나지만
자연과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시공초월 현상은
우주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였을 때 가능하다 하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법수련과 자연과학의 시공초월개념은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최고의 학문이라 하겠다.        

참고 문헌
[1] 단법수련 1, 2권, 나눔터, 임상수 저
[2] 유가심인 수 능엄경, 개운조사 주석
[3] 국선도 1, 2, 3권, 청산선사 저


                                  



..............................................

▶동국도맥(東國道脈).......참고자료◀  



▶동국도맥(東國道脈)◀


1.정양진인(正陽眞人;鍾離權)
  1)최승우(崔承佑)-최치원(崔致遠),이청(李淸)
  2)김가기(金可紀)
  3)승자혜(僧慈惠)-명법(明法)
  4)석현준(釋玄俊;尸解仙)

2.의상대사(義相大師)
  1)태백산노인(太白山老人)
  2)권진인(權眞人)
  3)남궁두(南宮斗),조전흘(趙傳흘)

3.자혜(慈惠;신라,승려)
  1)명오(明悟;승려)-권청(權淸;승려)-계현(게賢;고려)
  2)김시습(金時習;승려)
  3)윤군평(尹君平;參同契,龍虎秘旨)-곽치허(郭致虛)-한무외(韓      無畏)
  4)홍유손(洪裕孫;天遁劍法,練魔訣)-박묘관(朴妙觀)-장도관(張      道觀)
  5)정희랑(鄭希良;玉函記,內丹之法)-승대주(僧大珠)-박지화(朴      枝華)
      정염-정석
  6)그외 서경덕(徐敬德),장세미(張世美;승려),이지함(李之함)
     곽재우(郭再佑),강귀천(姜貴千),정두(鄭斗)등



***단학 관련 인물들

(1) 한무외(韓無畏)의 {해동전도록(海東傳道緣)}에 기록된 인물
통일신라말 : 김가기(金可紀), 최승우(崔承祐), 승 자혜(僧 慈惠, 의상대사?), 최치원(崔致遠), 이청(李淸). 고려 : 승 명법(僧 明法), 권청(權淸), 명오화상(明悟和尙), 원나라의 설현. 조선 : 조운흘, 김시습(金時習), 서경덕(徐敬德), 홍유손(洪裕孫), 정희량(鄭希良), 승 대주(僧 大株), 정렴, 박지화(朴枝華), 윤군평(尹君平), 곽치허(郭致虛), 박묘관(朴妙觀), 장세미(張世美), 강귀천(姜貴天), 장도관(張道觀).


(2) 조여적(趙汝籍, 先視대)의 {청학집(靑鶴集)}에 기재된 인물

신라 이전 : 환인(桓人), 단군(檀君), 문박(文朴), 영랑(永郎), 보덕(普德). 삼국 및 통일신라 : 호공, 탐시선인, 물계자(勿稽子), 대세(大世)와 구염, 원효(元曉), 도선(道詵), 옥보고(玉寶高). 고려 : 이명(李茗), 곽여(郭與), 최당, 한유한(韓惟漢), 한식(韓湜). 조선 : 청학상인(靑鶴上人, 魏漢祚), 채하자(彩霞子), 취굴자(翠窟子), 아예자, 계엽자(桂葉子), 백우자(百愚子), 편운자(片雲子, 李思淵), 김선자(金蟬子), 화오자(花塢子), 벽락자(碧落子) 등.


(3)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海東異蹟)}에 실린 인물

삼국 이전 : 단군. 삼국 및 통일신라 : 혁거세(赫居世), 동명왕(東明王), 사선(四仙), 옥보고, 김겸효(金謙孝)와 소하, 대세와 구염, 탐시, 김가기, 최치원, 선도성모(仙桃聖母). 고려 : 강감찬, 권진인(權眞人). 조선 : 김시습, 홍유손, 정붕(鄭鵬), 정수곤(鄭壽崑), 정희량, 남추, 지리산인(知異山人), 서경덕, 정렴, 전우치(田禹治), 윤군평, 한라산인(漢羅山人), 남사고(南師古), 박지화, 이지함, 한계노승(寒溪老僧), 유형진(柳亨進), 장한웅(張漢雄), 장생(蔣生), 곽재우(郭再祐).


(4) 이능화의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서 거론된 인물

환인, 환웅, 단군, 선도성모, 영랑, 사선, 호공, 탐시선인, 물계자, 대세와 구염, 옥보고, 우륵, 김겸효, 소하, 장미선녀, 김가기, 최승우, 자혜, 이청, 명법, 권청, 의상대사, 최치원, 김유신, 김암, 강감찬, 한유한, 한식, 남궁두, 김시습, 홍유손, 정희량, 윤군평, 박지화, 정렴, 장도관, 박묘관, 곽치허, 한무외, 남추, 조운흘, 장세미, 강귀천, 최도, 갑사만승(岬寺萬僧), 이광호(李光浩), 김세마(金世痲), 문유채(文有彩), 정지승(鄭之升), 이정계(李廷稽), 곽재우, 김덕랑, 이지함, 권극중, 청학상인, 김선자, 채하자, 취굴자, 아예자, 계엽자, 화오자, 벽락자, 송루, 운홍.

* 이상의 인물은 주로 {해동전도록}, {해동이적? {청학집}에 근거하고 {삼국유사(三國遺事)}, {빙연제집(氷淵제齋輯)}(윤극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이규경) 등에서 몇 인물을 첨가한 것이다.


(5) 황윤석의 {해동이적증보(海東異蹟增補)}에서 보충한 인물

삼국 이전 : 신지(神誌). 삼국 및 통일신라 : 우륵, 문무왕, 처용, 계변천신, 금구선인, 장미선녀, 연주선녀, 을밀선인, 안시용, 백제궁인(百濟宮人), 이영한. 조선 : 서호청, 이남, 정두, 이제신, 강서, 조충남, 앙사언, 김모제, 조헌, 허난설헌, 설도인, 서천객, 지리산장자, 태백산노인, 권극중, 소리자, 장도령, 신유한, 신두병, 유홍자, 편금자, 휴휴자, 성거사, 민응성, 김자겸, 주비, 성내헌, 김백련, 김치, 해중서생, 박화, 박구, 병자이인, 권화산, 오상렴, 김집의, 임숙영, 신해익, 허호, 허목, 오세억, 흥인문이인, 물치촌이인, 김대용, 정술, 영남사인, 송항(宋沆), 춘천구, 정돈시(鄭敦始), 한강선인(漢江仙人), 동촌이선(東村李仙), 나주정선(羅州鄭仙), 임계.


(6) 이의백의 {오계일지집(梧溪日誌集)}에서 거론된 인물

삼국 이전 : 환웅, 단군, 부루, 기자, 사선녀, 문박, 대왕, 신지. 심국 및 통일신라 : 해모수, 동명왕, 갈오도인, 김암, 천개도인, 보덕선녀, 밀향, 연향, 도흥, 최치원, 무골, 묵거. 조선 : 1) 이의백의 집안 이의백(李宜自), 이미연(李美延, 翠窟子), 이운홍, 이정운(李淨雲), 이흥종(李興宗), 이유(李愈). 2) 기타 한휴휴(韓沐休), 담월(潭月), 백우자(百愚子), 단세인(檀世人), 운곡대사(雲谷大師), 최호잠(崔孤岑), 채하자(彩霞子), 송처사(宋處士), 기표옹, 남궁생(南宮生), 선우도사(鮮于道士), 구진동자(九眞童子), 철장도인(鐵杖道人), 운악선생(雲岳先生), 자허거사(紫虛居士), 아두구, 구참여자(九參女子), 처운상인(處雲上人), 석문처사(石門處士), 칠산어인(七山漁人), 석진인(石眞人), 사시은(謝市隱), 해운당(海雲堂), 화옹(花翁), 귤거사(橘居士), 축종상인(竺宗上人), 김유정(金有錠), 사공성(司空星), 황보태(黃甫泰), 남궁환(南官歡).


(7) 아직 충분한 관련자료가 발견되진 않았으나
  선맥과 관련이 깊은 성리학자들                                                        

양사언(楊士彦), 서기(徐起), 김안국(金安國), 민이승(閔以升), 최석정(崔錫鼎), 허목(許穆), 장유(張維), 이서구(李書九), 이식(李植), 남구만(南九萬), 이준경(李浚慶), 이제신(李濟臣), 박엽(朴燁), 김치(金緻), 이한중(李漢中).


(8) 선맥과의 관련이 추측되는 승려들

원효(元曉), 의상(義湘), 진감(眞鑑), 도선(道詵), 서산(西山), 사명(四溟), 진묵(震默).


<자료출처:   >


***한국의 도교.....고려와 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도교

한국의 도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특별히 교단을 형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교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봉건 권력이나 지식인뿐 아니라
민간신앙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1. 성격

일반적으로 도교의 역사는 삼국시대의 중국도교 유입이나 고려시대의 의례 중심의 도교, 그리고 조선 중엽의 여러 인물의 행적이나 저술에서 드러나는 수련적 도교, 즉 내단(內丹)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에 비해 한국 도교의 원류를 고유의 신선사상에서 찾는 입장도 있다. 즉 단군신화를 비롯한 건국신화를 신선사상의 표현으로 보거나 중국 도교의 발생이 해동(海東)의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 중엽에 조여적(趙汝籍)이 〈청학집 靑鶴集〉을 저술하며, 조선 단학(丹學)의 계보를 밝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조여적은 조선 단학의 계보가 광성자(廣成子)-명유(明由)-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문박(文朴)-영랑(永郞)-보덕(普德)-도선(道詵)-최치원(崔致遠)-위한조(魏韓朝)-편운자(片運子)를 거쳐 자신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빙성은 없으나 조선 중기 도교적 수련에 관심을 지닌 지식인들의 민족의식과 연관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같은 입장은 〈조선도교사 朝鮮道敎史〉를 쓴 이능화(李能和)에게서도 두드러지며 오늘날에도 많은 호응을 받고 있으나 그 사실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2. 수용과 전개

한국 도교의 시발은 624년(영류왕 7)에 당(唐) 고조가 고구려에 도사(道士)를 파견하여 천존상(天尊像)을 보내고 〈도덕경〉을 강론하게 한 일이다. 이전에도 중국의 오두미교를 고구려인들이 신앙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643년(보장왕 2)에는 연개소문이 도교를 들여와 천하의 도술을 다 갖추어야 한다는 건의를 하여 당으로부터 숙달(叔達) 등의 도사와 〈도덕경〉을 들여오고 도교를 유교나 불교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고구려의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승려 보덕(普德)이 백제 땅이던 완산주(完山州)의 고대산(孤大山)으로 이주하는 등 불교측의 거센 반발이 일기도 했다.

신라에서는 김유신(金庾信)이나 그의 증손인 김암(金巖) 등이 도교적 방술에 능통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보다는 신라 하대 유당학인(留唐學人)들에 의한 수련도교(修練道敎)의 유입이 보다 중시된다.

도교가 극성하던 당에 유학한 신라 하대의 지식인들 중 김가기(金可紀)·최승우(崔承祐)와 승려 자혜(慈惠)는 천사(天師) 신원지(申元之)의 알선으로 종리권(鍾離權)으로부터 여러 도서(道書)와 구결(口訣)을 전수받고 수련하여 단(丹)을 이루었다.

이중 김가기는 중국의 도교전적인 〈운급칠첨〉 중 속선전(續仙傳)에 의하면 신라로 돌아오지 않고 당에서 백주등선(白晝登仙)했다고 하며 유당학인인 최치원과 이청(李淸)에게 구결을 전수했다. 최승우와 자혜는 신라에 돌아와 후인들에게 도요(道要)를 전수했다.

이로써 한국에 처음으로 중국의 수련적인 도교가 전해져 이후의 도맥(道脈)을 형성했고, 이러한 한국 도맥의 서술은 조선 중엽에 한무외(韓無畏)가 저술한 〈해동전도록 海東傳道錄〉에 의한 것으로 그 실제적인 전승과 내용은 신빙성이 약하다.


3. 고려시대의 도교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왕실의 복덕을 비는 국가의례 중심의 과의(科儀) 도교가 성했다고 평가된다.

기록으로는 현종 때부터 재초(齋醮)가 행해졌다고 하나 가장 성행한 것은 예종 때이다.

예종은 송(宋) 휘종(徽宗) 치하의 문물제도를 거의 받아들였는데, 휘종은 대단한 도교 애호가였다.

예종의 대표적인 도교숭상 사례가 복원궁(福源宮)의 건립과 30여 회에 걸친 재초의 시행이다. 복원궁 건립은 고려시대 최대의 도교 연구자인 이중약(李仲若)의 건의에 따라 건립되었다.

이중약은 어려서부터 〈도장 道藏〉을 즐겨 읽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도서를 읽고 수도생활을 했으며 도교적 의술도 연구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도교는 이처럼 국가와 왕실의 소재초복(消災招福)을 비는 의례 중심의 도교로서 수련적 도교에 대한 기록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국가의례 중심의 과의적 도교였던 것만은 아니며 의학의 발전과 수경신(守庚申)과 같은 민간 풍습의 형성 등 이후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이 컸다.


4. 조선시대의 도교

조선시대에 와서 고려시대의 과의적 도교는 초기에 왕실의 비호 아래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했으나 성리학적 이념과 의례를 절대시하는 유림의 득세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감히 제후의 나라에서 천지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재초를 거행할 수 없다는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 사림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1518년(중종 13) 재초 담당 관청인 소격서(昭格署)가 혁파(革罷)되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교적 흐름은 수련도교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저술은 한무외(韓无畏)의 〈해동전도록〉이다.

한무외는 이 저술에서 조선의 도맥이 태상노군(太上老君)-위백양(魏伯陽)-종리권(鍾離權)-최승우(崔承祐), 자혜(慈惠)-최치원(崔致遠), 이청(李淸), 명오(明悟), 김시습(金時習)-서경덕(徐敬德), 홍유손(洪裕孫)-곽치허(郭致虛)를 거쳐 자신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 태상노군은 노자(老子)를 가리키며, 위백양은 후한(後漢) 사람으로 연단(煉丹) 중심의 당 도교에 〈주역〉과 황노(黃老), 즉 황제와 노자의 도를 배합하여 그 이론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도교의 양생법(養生法)을 강조한 〈참동계 參同契〉의 저자이다.

이 〈참동계〉는 주자(朱子)도 관심을 갖고 〈참동계주석 參同契註釋〉을 펴냈다.

종리권은 금대(金代)에 성립된 전진교(全眞敎)의 종조(宗祖)인 여동빈(呂洞賓)에게 도를 전한 인물로 금단도(金丹道), 이른바 본성적 단학(丹學)의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이처럼 조선 중엽의 저술에서 주장되고 있는 도맥은 실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당시 도가적 수련에 심취한 지식인들의 가탁(假託)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들 도맥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신라 하대와 조선시대 사이의 실존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명백해진다.

즉 조의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는 보다 합리적이고 수련지향적인 전진교 계통의 도교를 받아들인 이 시기 지식인들이 유교적 도통론(道統論)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계통을 밝힐 필요성을 느낀 데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 조선에서 수련도교나 도교적 은둔생활의 기풍이 형성되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저술이나 의식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후 조선에서의 단학의 도맥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도교와 연관된 인물 등의 각종 이적(異蹟)을 기술한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 海東異蹟〉이나 도교 관계의 각종 변증설(辯證說)을 수록한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등 도교 관계 저술들이 연이은 것으로 보아 지식층의 관심이 지대했고, 그러한 생활양식이나 수련법이 꾸준히 맥을 이어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도교는 이외에도 민간신앙이나 의학 및 민간풍습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교가 민간신앙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성수신앙(星宿信仰)이다.

이는 특히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신앙으로서 고려시대의 팔성당(八聖堂)에서 보듯이 도교적 성수신앙과 고유한 산악숭배가 결합된 조선 특유의 신앙을 형성하였다.

또 민간에서 가신(家神)의 하나로 숭배되는 칠성은 바로 이 도교적 성수신앙의 직접적인 영향이다. 수련적 도교는 본디 예방의학적인 양생법이기에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결과 유명한 허준(許浚)의 〈동의보감 東醫寶鑑〉에는 도교적인 양생법과 세계관이 깊숙한 영향을 미쳤다.

또 도교 계통의 위경(僞經)인 〈옥추경 玉樞經〉은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내용 때문에 민간은 물론 불교에서도 널리 읽혀졌다.

한편 유·불·도 3교를 배합하여 선행을 권장하는 선서(善書)가 조선 초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는데, 그중 선행[功]과 악행[過]을 각각 점수로 매기는 〈공과격 功過格〉이 널리 유포되어 민간의 생활윤리를 앙양하는 데 일조를 했다.


<자료: 金鎬德 글>



***도가와 도교 (道家, 道敎, Taoism) .........金鎬德 글



개요
도가와 경전
노자와 도덕경
장자의 해석
도가사상
도가와 도교의 구분 이유
우주와 자연질서의 개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개념
초기의 이론적 절충
도가의 역사
진·한 시대의 도교
중국의 신선사상 전통
황로(黃老) 전동
혁명적 구세사상
진·한(秦漢) 이후 도가사상의 발전
도교의 출현
천사도와 도교조직에 관한 국가의 인정
도교의 체계적 성립과 전통
도교 비교주의(秘敎主義) 문학
당·송 이후의 도교
당의 도교
송·원 시대의 도교
도가사상의 영향
중국과학에 대한 도가의 공헌
현세 문학에 대한 영향
다른 사상과의 관계
현대의 도교
한국의 도교
성격
수용과 전개
고려시대의 도교
조선시대의 도교



개요

1. 중국의 전통적인 철학사상 및 종교.

도가사상은 유교사상과 더불어 2,000년 동안 중국과 그 주변국의 생활과 사상을 형성해온 중국 고유의 종교철학이다.
도가사상의 특징은 실용주의적인 유교와는 달리 현실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론에 있다.

도가에 대한 엄격한 정의에는 3가지 측면이 있다.
즉 도가철학은 〈노자 老子〉 또는 〈도덕경〉, 〈장자 莊子〉·>〈열자 列子〉 등과 같은 경전의 사상, '도'를 숭배하는 종교로서의 도교, 도가를 모두 포함한다.

도가사상은 중국문화의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스며 있다.
종교로서 도교는 국교인 유교와 비정형적인 민간신앙의 중간에 위치한다.

도가사상과 도교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의 한국·일본·베트남 등지로 퍼져나갔다. 한대(漢代 : BC 206~AD 220)를 전후하여 이전의 위대한 도가사상과 이후의 미신적인 도교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상 도교는 형성 때부터 고래(古來)의 주술사상과 관련이 깊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도교를 철학과 종교로 구분하는 것은 단지 서술의 편의를 위한 것뿐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도가사상과 유교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양자는 고대의 전통 속에서 인간·사회·군주·하늘·우주에 대해 많은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공유점 위에서 유교는 중국의 도덕과 정치체제에 관심을 두었고 도교는 보다 개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부분에 관심을 나타내었다.
한편 불교는 개인의 자아를 부정하고 현실세계의 허망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도교와 극히 대립적이다.

그러나 경쟁적인 포교과정 속에서 양자는 많은 유사성을 갖게 되었다. 송대(宋代) 이후 민간종교에서 도교와 불교는 명확한 구분없이 공존했다.


2. 도가와 경전

1). 노자와 도덕경

도교의 모든 이론은 노자에 의해 마련되었다. 노자에 대해서는 〈장자〉에서 처음 나온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당시까지의 전설을 모아 그에 대한 체계적인 최초의 전기를 썼다.

이들에 따르면 노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이고, 주(周) 조정에서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史官)을 지냈다. 공자가 그에게 예를 질문했다고 하며 뒤에 은퇴하여 〈노자〉(또는 〈도덕경〉)를 지었다.

그러나 〈도덕경〉은 노자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 의해 BC 3세기경에 편찬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도덕경〉은 군주에 대한 지침서이다.
이 책에서는 "성인(聖人)만이 군주가 되어야 하고 성군(聖君)은 백성에게 어떠한 금지나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분별·도덕·욕심 때문에 모든 번잡한 문제가 일어나므로 성군은 백성들이 이것을 제거하도록 다스려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이 책에서 성인의 개념은 중국의 다른 경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왕의 권위를 둘러싸고 있는 신성한 영기(靈氣)는 여기에서 '무위'(無爲)로 표현된다.
이 무위는 우주론적 정향을 지향하는 것, 즉 부자연스런 행위를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강경함을 제압하는 정치의 한 방법으로 여성적인 유약함이나 소극성이 찬양되는 것이다.
또한 〈도덕경〉은 보편적인 도(道) 자체의 궁극적인 통일을 사회적 이상으로 본다.

문학에서는 당시대의 대화법과 일화를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도덕경〉은 신비적인 주제들을 간결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표현해낸 고도의 압축된 문체로 유명하다.


2). 장자의 해석

〈사기〉는 장자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학문은 엿보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근본에서는 노자의 사상으로 귀결된다……"
이와 같이 장자는 노자와 도가사상을 계승했고 더 나아가 노자와 구분되는 사상적 특색을 가지고 자신의 독특한 철학사상 체계와 학풍, 그리고 문풍(文風)을 형성시켰다.

〈도덕경〉이 성군을 향한 것으로서 사회적·정치적 개혁을 목표로 했다면 〈장자〉는 개인의 생활·본성을 보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노자가 그의 책과 삶에서 도가의 기본원리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면, 몇 세대 뒤의 장자는 사회 참여를 일절 거부하고 궁극적인 관심을 소요유(逍遙遊)에 두었다.
〈장자〉에서는 또한 모든 가치의 상대성이 강조된다.

만물일제(萬物一齊)의 사상, 즉 "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이 세상에서 귀하고 천한 것의 구분이 없다"(爾觀之, 物無貴賤)는 것이다.
즉 삶과 죽음은 같으며 따라서 죽음 자체는 도에 합치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2. 도가사상

도가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 다시 말하면 우주와 인간사회의 상호작용, 시간의 주기적 성격과 우주의 리듬, 복귀(反者道之動)의 법칙 등이다.

1).도가와 도교의 구분 이유

중국에서 도가와 도교는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철학유파로, 후자는 중국의 전통적인 종교와 교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도가와 도교를 구분하는 데에는 3가지의 관점이 있다.

첫째, 중국학자들은 도교는 도가사상이 복잡한 다른 사상이나 신앙을 섭취함으로써 본래의 순수성을 잃은, 타락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도가 속에 도교가 포함된다.

둘째, 프랑스학파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학자들은 도교는 도가사상의 발전형태로 이해해야 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도교가 도가사상의 타락한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거하여 도가와 도교를 구분하지 않고 다오이즘(Taoism)의 한 단어로 양자를 모두 호칭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가를 철학적 다오이즘(Philosophical Taoism)이라고 불러, 도교와 구분하기도 한다.

셋째, 일본학자들은 도가와 도교를 명확히 구분하여 전자를 철학, 후자를 종교라고 한다.


2). 우주와 자연질서의 개념

① 우주론 :
노자는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불변한 도가 아니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고 했다.

이는 중국 고대사상 중에서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려면
각자의 이름[名 : 신분]에 걸맞는 내용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명론(正名論)과는 그 범주에서 다르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초요 유명(有名)은 만물의 모태(母胎)이다."

즉 무명과 유명, 무와 유는
상호의존적이며 영원한 도의 양 측면이다.

무는 아무 것도 없음이 아니라
감지할 수 있는 질(質)이 없음을 의미한다.
노자에게서 무는 유보다 상위개념이다.

② 소우주와 대우주 개념 :
인간은 대우주에 대응하는 소우주이다.

인간과 우주 사이에는
그 체계에서 일치하는 점과 연관성이 존재한다.

인간과 자연질서가 통일적으로 융합되어야 한다는
신비로운 사상은 중국사상의 고유한 특징이며
도가가 특히 이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③ 도에로의 복귀 :
자연질서로서 도의 법칙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이 애초에 시작한 시점으로
계속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휘어지면 온전하게 되고 굽으면 곧게 되고
움푹 패이면 꽉 차게 되고 낡으면 새롭게 되고…… 등등은
모두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
(反者道之動)라는 법칙에서 나온 말이다.

삶과 죽음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무'에서 '유'로, 다시 '무'로 반복되는
영원한 변화 속에 놓여 있지만
그 기초가 되는 최초의 합일성은 상실되지 않는다.

④ 발전과 분화 :
〈주역 周易〉의 5행(五行)과 64괘의 이론에 따르면
변화 자체는 어떤 체계를 가지고 일어나며
또한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장자의 생각은 도공과 장인의 활동,
즉 '형성시키고 변화시키는 것'(造化)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동일한 과정의 두 국면이다.
즉 미지의 도가 태초의 혼돈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우주를 형성시킨다.

그리고 음(陰)과 양(陽)의 반복에 따른
우주의 영원한 변화(밤과 낮, 겨울과 여름 같은 것)는
동일한 도의 바깥면에 지나지 않는다.


3).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개념

① 무위 :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과장하지 않음을 뜻한다.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고
인공의 힘을 가하지 않은 자연스런 행위를 뜻한다.

"완전한 행위란 그뒤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모든 자연의 과정에서 인위적인 것이 끼어들게 되면
그것은 항상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되거나
실패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무위 없이는 진정한 성공이란 있을 수 없다.

② 도가 원시사상의 사회적 이상 :
초기의 도가사상에서는 계획적인 인간의 간섭은
자연의 변화과정의 조화를 깨뜨리게 된다고 믿었다.

원시농경사회의 자연적인 리듬과 자연의 커다란 움직임 속에서
사심없이 공동체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도가가 이상으로 여기는 사회이다.

장자는 유가에 의해 찬양되는 문화영웅이나 문화·제도의 창시자,
사회의 의식과 규범을 만든 성현들까지도 비난했다.

심지어는 '지식욕'까지도
그것이 경쟁심을 자아내고 물욕을 자아내어
분쟁을 일으킨다고 하며 비판했다.

③ 지식과 언어에 대한 사상 :
장자는 중국의 논리학자인 혜시(惠施)로부터 자극을 받아
그의 지식과 언어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도가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와 만물은 근본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의견대립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전체적인 시야를 갖지 못하고
부분적인 진리를 절대적으로 간주할 때만 일어난다.

따라서 장자가 생각하는 성인(聖人)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등과 같은 관념의 상대성을 완전히 인지한 사람이다.

"그대가 변론(辯論)할 때면
그대가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다.
가장 위대한 도는 어떠한 이름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훌륭 한 변론에서는
어떠한 것도 말해지지 않는다."

④ 삶과 죽음의 동일성 :
신비로운 깨달음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구분을 없앤다.
이러한 사상은 죽음에 대한 장자의 태도를 규정지었다.

삶과 죽음은 단지 낮과 밤, 여름과 겨울처럼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기적인 단계의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 자체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거대한 베틀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베틀에서 나와 베틀로 돌아간다."

일상적인 지(知)의 분별을 잊은
망(忘)의 상태에서 본다면
생시의 장자와 꿈에서 나비가 된
장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생과 사를 구분하기 어렵다.

⑤ 인간의 종교적 목표 :
유교에서 성인(聖人)은
고대의 의례를 회복하는 길을 가르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도가의 성인개념이 정적주의(靜寂主義)를 통해서
세상을 도의 길로 인도하는 외왕(外王)에 의해
분명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가에서의 성인은 내성(內聖)이다.

보통사람은 세속적인 탐욕과 부,
특히 일상적인 지(知)에 의해
흐트러지고 자신의 힘을 마르게 하지만
성인은 "통일성을 파악하고",
"하나를 굳게 잡는다"(抱一).
즉 성인은 의식의 기초를 이루는
태초의 혼돈상태의 도를 가지고 통일성을 희구한다.

'통일성의 파악'은
또한 자기 자신 내부의 음양의 조화를 유지하고
혼(魂)과 백(魄)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혼백을 보존하고 조화시키는 것은
육체적인 생활을 위해서와 똑같이
인간의 실재 전체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옛 도가의 진인(眞人)들은 오랜 삶을 통해
스스로를 함양함으로써 성인이 되었다.

그들의 장수(長壽) 자체야말로
그들의 성인다움과 도와의 일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오묘한 성찰 속에서 장자는 육체적인 수행을 통해
장수와 불사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렇지만 육체적 불사는 도교 신비주의가 전개됨에 따라,
그리고 이전부터 오랫동안 도가의 목표였다.


⑥ 상징주의와 신화 :
도가들은 그들의 좌망(坐忘) 상태에서의
통찰력을 상징과 우화를 사용해 표현했다.
예를 들면 도는 골짜기와 같이 낮으며 수동적이고,
물과 같이 유연하며 생명력을 주는 것이다.

도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만물의 어머니이며,
신비에 싸인 듯한 여성과 같은 것이다.
또한 수레의 축이며, 들보이고, 바퀴의 비어 있는 중심이라고 했다.

많은 고대 중국의 신화는 도가에 의해 보존되었는데
그들은 도가의 사상을 예시하기 위해 신화를 끌어들였다.

신비로운 낙원, 구름을 타고 다니는 여행,
날아다니는 용에 대한 꿈은 혼백의 방황,
도의 깨달음, 꿈과 현실의 동일성에 대한 은유이다.


4). 초기의 이론적 절충

① 음·양과 기(氣)의 사상 :

음과 양은 모든 중국철학의 공통된 줄기이다(→ 색인 : 음양오행설).
음과 양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교대로 일어나는
상호보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2개의 원리 또는 국면이다.

음·양은 우주의 모든 대립쌍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상징이다.
음·양의 변화와 상호작용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음과 양은 자주 2개의 '기'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원초적인 생명력의 한 부분인 '기'를 갖고 있다.

사람이 할 일은 그에게 주어진 생애를 모두 마치기 위해 '
기'를 강하게 하고 다스리며 키워나갈 수 있도록
분별있는 생활을 해 '기'를 해치지 않는 것이다.

음양가(陰陽家)와 관련해
또다른 중요한 개념으로는
오행과 오덕(五德)이 있다.

② 양주(楊朱)와 열자(列子) :

양주(BC 400경)는
'사회를 개선하려는 공자의 열정을 비웃은'
초기 도가 운둔자들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다.

양주는 모든 사람은 어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생명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세상을 다 준다 하더라도
자기의 머리카락 한 올도 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사상은 〈열자〉에 잘 나타나 있다.

열자는 많은 고대전설 속에서
영혼의 여행을 했다고 하는 유명한 인물로 나오며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활동작용 전체를
기계론적으로 파악한 철학자였다.


③ 관자(管子)와 회남자(淮南子) :

도교의 색채가 들어 있는 〈관자〉의 몇몇 부분은
'심술'(心術)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 있다.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듯이 '심'은 육체를 다스린다.

〈회남자〉는 그당시까지에서 가장 정교한 우주철학,
즉 대우주 속의 인간의 위치, 사회 질서,
인간의 '성인다움'을 지향한 이상에 대해 논했다.



3. 도가의 역사

1). 진·한 시대의 도교

*중국의 신선사상 전통
진·한 시대(BC 221~AD 220) 동안
도교사상과 수행의 발전은
주로 황실이라는 유리한 장소에서 발전했다.
권력의 공고화와 확대를 열망했던 황제들은
자연히 비법가(秘法家)를 우대했다.

동부 해안지역[山東]으로부터 일련의 비법가들이
진과 전한의 조정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신선들이 사는 섬들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섬은 장자가 말한 바 있는 섬이었다.

그들 동부인들은 황제의 건강과 장수를 보장해주는,
신선에 대한 제사의식 등을 제국의 수도에 끌어들였다.
여기에서 최초로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선방술이 복잡하게 발전했다.

*황로(黃老) 전통
황로사상가란 전설상의 황제(黃帝)와 노자의 숭배자를 말한다.
그들은 노자를 완전한 통치술을 밝힌 사람으로 존경한다.

사마천(司馬遷)이 황제의 치세와 더불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기술했듯이
황제(黃帝)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다스림으로써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황로사상의 가르침은
산둥[山東] 지방에 있던 제(齊) 왕실에서부터
곧 모든 지식인과 관리들에게 확산되었다.

전한시대의 많은 정치가들은
황로사상의 가르침에 따라
무위(無爲)로 통치하려고 노력했다.

한 무제(武帝 : BC 141/140~ 87/86) 때에는
직접적인 정치적 관련성은 상실했지만
이상적 통치와 장수비결에 대한
황로사상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도가운동이라 할 만하다.

*혁명적 구세사상
감충가(甘忠可)의 〈태평경 太平經〉에서부터 나온
혁명적 구세사상(救世思想)은 왕망(王莽)이 세운
신(新)을 물리치고 후한을 세우는 데 기여했지만
후한이 쇄락해가자 민중들은 더이상 한의 부흥을 바라지 않았다.

황로사상을 신봉한 운동이었던
황건(黃巾)의 난(184)은 결국 실패했다.

이후에도 이와같은
혁명적 구세사상에 따른 반란은
역사상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과 운동은
후한 말기에 종교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한
도교의 활동과는 무관한 것으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2). 진·한(秦漢) 이후 도가사상의 발전

*3~4세기에 도가는 3방향으로 발전했다.

첫째, '현학'(玄學)으로 왕필(王弼 : 226~249)의 〈노자주 老子注〉나
곽상(郭象 : ?~312)의 〈장자주 莊子注〉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왕필은 송학(宋學)보다 앞서 이(理)를 말했고,
곽상은 자연을 중심개념으로 서술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성인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는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완성된 생활을 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최대의 성인은 노자가 아니라
공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열자가 출현하여 숙명론적 자연주의를 말했다.
셋째,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는 청담사조(淸談思潮)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 사조는 2세기 중엽부터 6세기초까지 계속되었다.
11세기에 도가사상은 성리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성리학자들이 도가의 정적주의와 무위사상을 호되게 비판한 결과,
도가사상은 11세기 이후에는 철학체계로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정서에서는
중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1)도교의 출현

진·한(秦漢) 때의 신선방술(神仙方術)과
황로지학(黃老之學)이 도교의 전신이다.
후한의 순제(順帝) 때 장릉(張陵)이
오두미교(五斗米敎)를 창시하여
노자를 교주로 삼아 도교를 형성시켰다.

또한 후한의 영제(靈帝) 때에 장각(張角)이 세운
'태평도'(太平道)는 초기 도교의 중요한 파벌을 형성했다.

이때부터 신비한 방술로
장생불사를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파종단(敎派宗團)으로서의 도교가 시작되었다.

태평도란 후한의 간길(干吉 : 혹은 于吉)이 창시하고,
그후 184년 장각을 중심으로 하여 황허 강[黃河]
이북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황건적(黃巾賊)이 신봉하던 종교이다.

〈태평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은
병의 치료, 권선(勸善), 수일(守一 : 靜坐에 의한 정신통일),
천·지·인(天地人)의 조화 등을 꾀했다.

오두미도는 그 교문(敎門)에 들어갈 때
5두(斗)의 쌀을 바친다고 하여 오두미도라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는 천사도(天師道)라고 했으며
13세기부터는 정일교(正一敎)라고 불렀다.


(2)천사도와 도교조직에 관한 국가의 인정

장릉이 죽은 후에, 아들 장형(張衡)과
손자 장로(張魯)가 그 술(術)을 전했다.

이들을 3장(三張)이라 하고
각각 천사(天師)·사사(嗣師)·계사(係師)라 불렀다.

장릉은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에
'천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2세기 후반까지 그의 자손들의 지도하에 천사도는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독립적인 종교·정치 조직으로 발전했다.
215년에 장릉의 손자 장로가 조조(曺操)에게 투항했다.

이후 조조가 세운 위(魏)에서 천사도는
하나의 국가적인 종파로 인정되었다.
그대신 천사도는 위를 한을 대신한 왕조로 합리화해주었다.

이와 같이 국가와 타협함으로써
도교의 교리 또한 체제 인정의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천사도는 위와 서진(西晉)의 궁중에서 3세기말까지
꾸준히 발전했고 북조(北朝) 여러 나라의 많은 권세가들이 교도가 되었다.


(3)도교의 체계적 성립과 전통

① 방술(方術)의 발전 :

도교의 사상과 방술은 4세기 진대(晉代)에 와서
갈홍(葛洪)의 〈포박자 抱朴子〉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갈홍은 내편(內篇) 2권과 외편(外篇) 50권 속에서
신선양생술(神仙養生術)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서 도가사상과 신선설이 결합을 보게 된다.

또한 이때부터 태평도와 오두미도는 천사도로 총칭되었다.

구겸지(寇謙之)는 천사도를 계승하여
북위(北魏)의 세조(世祖) 때에 국교화시켰다.

그는 장로의 방술을 닦았고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는 대신(大神)에게서
〈운중음송신과지계 雲中音誦新科之誡〉를 받고 천사의 자리를 물려받아
장릉 이후의 천사도를 쇄신하라는 명을 받았다.

구겸지는 유(儒)·불(佛) 양교에 대해
자신들의 종교를 처음으로 '도교'라 칭했다.
여기에서 도교는 하나의 종교교단으로서 성립을 본 것이다.

6조(六朝) 도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양(梁)나라의 도홍경(陶弘景: 456~536)을 꼽는다.
그는 각지를 순례하고 도교를 체계화했으며 도교사상을 집대성했다.

37세에 구용(句容)의 마오산 산[茅山]에 은거했고,
이때 양의 무제(武帝)가 산 속에 있는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그의 저작으로는 마오산파에게
강신(降神)한 진인(眞人)의 말씀의 필사본을
교정한 〈진고 眞誥〉와 〈등진은결 登眞隱訣〉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포박자〉가 선인이 되는 방법으로
금단(金丹)의 제조나 복용을 강조한 데 반해
도홍경은 수일(守一)의 실제적인 수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오산파에 속해 있으면서 조정의 관리였던 허매(許邁)와
그의 아들 허목(許穆)은 강력한 신(新)도교 계시의 주요한 수혜자였다.

허씨 부자의 봉사 속에서 양희(楊羲)는
상청(上淸)의 하늘에서 온 진인들의 방문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② 제의(祭儀) :

도교의 핵심은 주기적인 제의를 거행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아 있는 기록은 극히 적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1년중 특별히 1, 7, 10월에 올리는
축제인 제초(齊醮)이다.

또한 도첩(道牒)을 처음 받거나
도량[道場]을 봉헌할 때 하는 제의도 중요한 것이다.
이들 제의는 상황에 따라 정성의 정도가 다양하다.

제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합기(合氣)라고 하는
공동의 성적(性的) 제의인데 매달 거행된다.
불교에서는 이를 극히 방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 제의는 고대 농경사회의 축제 등의 관습이 통합된 형태로 보인다.


(4). 도교 비교주의(秘敎主義) 문학

① 주석가들 :
〈도덕경〉에 대한 많은 주석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왕필이 쓴 것이다.
그는 현학파(玄學派)의 시조이다.
〈장자〉에 대한 주석은 곽상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 책은 원시유교적 경향이 농후했다.
행정관리의 입장에서 도가사상의 도전에 직면했던 그들은
도교경전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취하려 하지 않았다.

정관주의(靜觀主義)적인 도교경전에 대한 해석적 주석서는
계속하여 씌어졌는데 이때의 해석에는 불교를 포함한
매우 다양한 철학들이 동원되었다.

② 신선들 :
〈장자〉에 나오는 신선들은 한대까지 보편적인 흥미의 대상이었다.
전설적인 신선들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모은 책은 2세기초의 〈열선전 列仙傳〉이다.

이 책은 72명의 제자가 등장하는
〈논어 論語〉와 같이 72명을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고,
신선들 각각의 전(傳) 끝에는 짧은 찬(讚)이 붙어 있다.

전기문학의 이러한 형식은
이후 시문의 발전단계에서 시에
산문이 섞인 형태의 발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③ 노자숭배의 경전 :
중국의 종교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 가운데 하나는
노자가 성인(聖人)에서 신으로 바뀌어가는 현상이다.
둔황[敦煌]에서 발견된 〈노자변화경 老子變化經〉은
노자를 모든 생의 기원으로서
어느 때나 나타날 수 있는 전능한 우주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3). 당·송 이후의 도교


(1), 당의 도교

중국을 재통일한 당이 들어서자 도교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 고조 이연(李淵)은 노자와 성이 같다고 하여
자신을 노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당의 거대한 영토 전역에 걸쳐 도교가 널리 전파된 사실은
둔황의 석굴에서 발견된 수많은 도교 서적에서도 증명된다.

도홍경의 맥을 이은 왕원지(王遠知)가
남북의 도교를 종합하여
당대 도교의 기초를 다졌다.

중국의 극서지방에 위치한 둔황은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여기에서 도가들은 불교를 비롯하여
교의상으로 매우 다른 조로아스터교·마니교와도 접촉했다.

〈장자〉의 사본이 토번(吐蕃) 왕에게 보내졌고
카시미르 왕의 명에 의해 산스크리트로 번역되었다.


(2). 송·원 시대의 도교

① 중국 내에서의 발전 :
송(宋 : 960~1279)과 원(元 : 1271~1368)에서 도교는
종교적으로 크게 활기를 띠었다.

이것은 송대에는 부분적으로 이민족 침입에 자극받은 것이고,
원대에는 몽골 지배층에서 당시 유행하던
금강승(金剛乘)으로부터 자극받은 것이다.

남송시대가 되면서 이민족에게 점령된 북부 중국에서
많은 수의 새로운 도교 종파가 생겨나고
이들은 급속히 세력을 확대시켰다.

② 도교 서적의 발전 :
일찍이 570년경 모든 도교학파의 학설을
알기 쉽게 이해할 필요성에 따라
최초로 방대한 도교 백과사전이 편찬되었다.

이것은 갖가지 서적에서 추출된 내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러한 편찬서들은 송·원대에 상당히 많이 저술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운급칠첨 雲 七籤〉(1022경)으로
송 이전의 도교를 총괄한 것이다.

전교(傳敎)를 위한 교훈적 소책자는
한층 대중적인 양식을 갖추었다.

또한 모든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수많은 비문(碑文)이 있는데,
이것은 도가와 그들의 후원자에 대한 중요한 역사자료이다.

③ 금단(金丹)의 발전 :
학식있는 전문가들이 연단술(鍊丹術)을 정제하면서
내단(內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제약 용어인 내단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말할 때 쓰인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연단술에 대한 은유는 매우 일찍부터 생리학에 적용되어왔다.
예를 들면 갈홍은 정액을 '음(陰)불로장생약'으로 불렀다.

그러나 송대에 오면 체계적으로 내밀화되고
세련된 연단술이 매우 넓게 퍼져나감으로써
더 일찍부터 씌어진 외단(外丹)에 관한 모든 책이
이때부터는 내단에 대해 쓴 것으로 믿어졌고
또한 이때까지 진짜 불로장생약을 만들려던 시도들을
더이상 속임수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④ 학설의 융합 :
유교는 이미 불교로부터 많은 점을 수용하여 발전하고 있었다.

도가들 또한 뒤늦지 않게 선종(禪宗 : 수행에서 직관을 강조함)와
성리학(性理學 : 지식과 이성을 강조함)의 학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과 종합했다.
또한 민간 도교의 성격을 띤 3교(三敎) 절충의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4. 도가사상의 영향

도가는 선진(先秦)시대의 중요한 학파 중의 하나로
중국 고대철학의 전체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상 도가철학은 정통 유학에 비판적인 인물들인
한대(漢代)의 양웅(揚雄)·왕충(王充) 등의 사상을 변화시켰으며,
송·명(宋明) 이학과 같은 관변유학에 흡수되기도 했다.

또한 한대 초기의 황로학(黃老學)이나
위·진 현학(魏晉玄學)에서와 같이 통치철학이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도가철학은
도교의 종교철학체계 수립과
불교의 사상발전에 기여했다.

한대나 위진남북조 시기의 불교는
종종 도가사상을 원용해 인도의 불경을 해석하기도 했다.
양진(兩晉) 시기의 불교인 반야학(般若學)은
도 (玄學)·불


PREV   국선도-- 단전호흡 H.U.Seol M.D.,Ph.D.
NEXT   仙佛家眞修語錄 H.U.Seol M.D.,Ph.D.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Copyright ⓒ 2004 서울 성의학 클리닉. All rights reserved.